기환이라고 불리던 시절

마지막으로 누군가 나를 기환이라고 부른 게 언제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때는 부모님도, 할머니도, 학교 선생님도 모두 나를 기환이라고 불렀다. 그때는 너무나 당연했던 이름인데, 어느새 그 이름을 듣지 않고 살아온 지 20년 가까이 된 것 같다.

나는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태어나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조선족 학교에 다녔다. 그런데 조금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학교에서는 조선말로 수업을 들었지만, 친구들과 놀 때는 거의 중국말을 썼다. 집에서도 주로 중국말을 사용했다. 중국말은 사실상 나의 첫 번째 언어였다.

조선말은 학교에서 가장 자신 없는 과목이었다. 그렇다고 성적이 나빴던 건 아니다. 읽고 외우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조선말로 내 생각을 표현해 보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험에서는 배운 내용을 외우거나 정해진 틀에 맞춰 글을 썼을 뿐이다.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늘 중국말을 사용했다.

그렇게 자라서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다. 회사에서는 주로 영어를 쓰고, 일상에서는 일본어를 쓰며, 중국말도 계속 사용한다. 개인 블로그에도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글을 써 왔다. 그런데 정작 어릴 때부터 배웠던 조선말로는 글을 한 편도 쓰지 않았다.

사실 지금도 조선말로 된 글을 읽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직접 말하거나 글을 쓰려고 하면 적당한 단어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어가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다. 회사에서 한국인 동료를 만나도 조선말로 인사만 나누고 곧 영어로 돌아가곤 한다. 어느새 머리가 그렇게 굳어 버린 모양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조선말로도 글을 써 보고 싶어졌다.

왜 그런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과 내가 자란 곳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아진 것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다. 언젠가 두 딸에게 아빠가 어떤 곳에서 왔고 어떻게 자랐는지 들려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조선말이라는 언어 자체에 늘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면서 각각의 언어가 가진 아름다움을 느껴 왔다. 조선말도 마찬가지다. 특히 한강의 『흰』을 읽었을 때 받은 충격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언젠가는 나도 조선말로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렇게 글을 쓰는 과정에서 지금까지 몰랐던 내 모습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는 조선말을 잘했다가 잊어버린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없었던 언어이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언어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의 요구도 아닌 내 선택으로 조금씩 써 보려고 한다.

왜 이제 와서 이 언어로 글을 쓰고 싶은지, 그 이유도 쓰면서 찾아가면 좋겠다.

Qihuan Piao

박기환

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자랐고, 지금은 도쿄에 살고 있습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책과 일상,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남겨 왔습니다. 이제 조선말로도 조금씩 나만의 목소리를 찾아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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